스페인 8박 10일 여행을 다녀 온 후, 몇 가지 간단하게나마 정리하는 글을 올려봅니다.
트래블러스 맵이라는 여행사를 통해 공정여행이라는 소개를 들을 수 있었고 이는 현지인들의 삶을 존중하며 현지의 문화를 배워간다는 의미라 들리긴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소 추상적인 개념으로 전해졌기에 가 보고서 과연 어떠한 의미인지 느껴보기로 하였습니다.
현지 가이드로 바르셀로나 교포분 (신진호 선생님)께서 나와 주셨는데 여행 내내 믿음직한 말씀과 안내로 편하게 여행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현지 여행을, 서로 간에 국내에서 전혀 사전 인사가 없는 상태에서 저희 가족 다섯 명이랑 다른 한 가족 (네 명)이 같이 하게 되었는데 마드리드 현지 도착과 바르셀로나에서의 귀국일정이 서로 다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함에 상관없이 마치 서로 이미 이전에 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현지에서 맘 편하게 여행을 같이 했고 이 또한 가이드 분 및 서로의 가족들 간의 귀한 인연이 이미 깃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행 후기란 것이, 일일이 어디를 다녀왔고 어디 가서 좋았고... 이런 얘기는 여행한 장소와 시간에 대한 다른 기록물로 남겨 놓는 게 낫겠다 싶어 여기에는 그런 식의 풀이보다는 여행 내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를 몇 가지 간단히 적어 보겠습니다.
“세비야에선 (밤에) 집에 있는 사람은 아픈 사람이다”
세비야의 tapa(s)문화를 접하면서 재밌는 얘길 듣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밤문화를 한국처럼 즐기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얘기가 일단 되겠는데요, 굳이 한국과 유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국민들의 생활 모습이 일단 낙천적이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에게 있어 한 개인 하나 하나의 존재감과 나 아닌 다른 이와의 어우러짐이 두드려져 보인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스페인에는 갑을 관계가 없습니다.”
버스 매표소의 근무 자리 비운 사실에 대해 표정 당당했던 (놀고 온 게 아니란 식의) 직원 아저씨의 모습. 실제적 잘못이 없어도 일단 무조건 굽신대는, 고객이 왕이라는 우리네 서비스의 갑을 관계가 자연 떠오르는 모습. 개인의 논리적이고 자연적 판단으로 움직이는 그 스페인 사람과 개인의 이성적 판단보단 조직의 규정된 매뉴얼로 우선 먼저 움직여야 하는 한국 사람의 모습이 겹쳐지는 장면. 잠시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보고 떠나는 관광객보다 거기서 살아야 하는 현지인들이 우선이다”
물론 스페인 관광객들이 불편해도 차고 넘치는 인파를 이뤄주는 데서 기인하는 여유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관광 산업을 주요 먹거리 중 하나로 생각하는 거라면 이런 여유는 단순히 거만한 여유라기보다는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중심을 잡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현지의 삶이 좋아야 결국 손님들도 좋게 된다는 논리는 스페인만의 논리는 아닐 것입니다.
바르셀로나의 거리에 놓여 있는, 앉는 사람들간의 시선과 거리를 감안한 의자 배치를 보며 이런 단순한 작업에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깃들어 있음을 짐작하게 하였습니다. 공동체의 삶에 있어 서로의 존중과 배려 의식이 살아있음까지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면 과한 평가일런지 모르겠습니다. 행정은 행정이고 주민의 삶은 삶일 뿐인 따로 움직여 돌아가는, 덩그러이 자로 잰 듯이 일자배치로 놓여져 있는 우리네 거리 의자들과 대조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스페인 도시 건물의 겉모습만 보면, 이 건물이 대체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과거의 바랜 역사를 현재의 새로움으로 치환하려 굳이 애쓰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가우디의 경우처럼, 긴 시간과 비용을 마다 않는 (우리네의 단기간 개발모드 사고로는 불필요한 낭비적 짓거리로까지 비쳐질 정도의) 그들의 삶의 방식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부지만 유행의 형태로 나타나는 ‘느리게 사는 법’의 한 정형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또한 길고 긴 세월 속에서 적대적 대립 대상이었던 이슬람 문화를 굳이 스페인화하려고 볼썽 사납게 무리하지 않고 그냥 있는 역사 사실을 껴 안고 가는 모습과 더불어 백년 단위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담고 있는 (개별적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각기 건물들의 모습에서, 단기간의 재건축으로 터조차 기억되지 못하게끔 완전히 탈바꿈되는 것이 발전으로 인식되는 우리네 뿌리잃은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역사의식과 민족의 비전은 불가분의 관계라는데 이런 부분에서 스페인의 경우는 부러운 상황이라 생각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광장이라기엔 소박한 장소 하나가 저에겐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Sant Felip Neri. 철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습니다. 여기가 학교로 재활용되어 사용되다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잘못된 과거로 인한 까딸루냐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그대로 현장으로 간직한 채, 까딸루냐의 시간과 공간은 그들의 존재를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 가혹한 식민 통치를 받았던 우리의 삶이 연상되어선지 불현듯 감정이입까지 되었더랬습니다.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스페인어라고 하는 그 주류 언어에 대항하는 까탈루냐 어. 그것이 귀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저 같은 외국인 입장에서 근거 없는 친밀감으로 가슴에 다가 오기까지 한 것은 이런 역사의 유사점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8박 기간 동안의 스페인에 대한 전체적 인상은,
넓은 땅,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농업에 호의적인 날씨,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무수한 관광객들, 그리고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아 저평가되어 있지만 경제의 주요 골격을 이루는 제조업 분야 등 스페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이러한 긍정적 사실과 더불어 우리의 근현대사의 경우처럼 스페인에도 존재했던 아픈 과거의 흔적, 그러니까 우리네 군사독재의 폐해처럼 극심했던 프랑코 철권 통치로 인해 엉망으로 뒤엉켜버린 그 긴 과거의 시간과 그럼으로 지금까지 남겨진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일부지만 다녀 보았던 스페인의 모습은 과거의 영광의 삶이 워낙에 강했던 탓인지 아니면 우리완 달리 긴긴 세월 속에서 이슬비에 옷젖듯이 다져진 내적인 힘에 의해선지 현지에서 느껴졌던 다양한 여러 기억들로 우리네 건조한 삶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겨 주었습니다.
적다보니 좋은 인상만 받은 듯하지만 문화적 차이라고 보기엔 곤란한 것들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예로, 바르셀로나에서 묵었던 호텔 첫날 밤에 가뜩이나 밤 늦게 바르셀로나로 이동한 거라 좀 피곤했던 차인데 호텔 화장실 세면대가 고장이 나서 물이 바닥으로 홍건히 새어 버린 일이 생겨서 침대에 누워자는 막내를 안고 짐을 이고 지고 다시 다른 객실로 이동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3인실에서 2인실로 급히 이동했는데 객실 차액이 발생하는 것을 콜 서비스 담당분과 얘길 했는데 그 부분은 내일 discuss 하자고 말을 하더군요. 그런데 내일 (사실은 이미 담날로 넘어온 오전) 되니까 담당분이 바뀌고 그런 얘긴 모르쇠가 되어 버렸습니다. 신 선생님 말씀은, 스페인 사람들이 일하는 게 이런 식이라면서 결국 다른 3인실로 옮기면서 그 날 하루 2인실로 간 것은 그냥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없는 서비스 내지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서비스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고 호텔측의 과실로 발생한 문제니 객실 비용의 감액이든 공식적 사과든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대처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날 밤에 상황 보러 와서 Sorry 라고 말하고 2인실로 짐 옮길 때 좀 옆에서 들어 주려 했던 것으로 끝나버리니 이건 문화의 차이라고 넘기기엔 곤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정교하게 대응하긴 어려운 상황이라 좋게 허허 하고 넘어갔는데 이런 해프닝을 두고 스페인의 문화가 전체적으로 어떻다라고 정의내리 듯 얘기할 수는 없겠지요. 앞서 기술한 여러 인상들로 합쳐진 큰 덩어리 속에 또 하나의 다른 인상으로 겹치게 되었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어찌되었든간에
여행은 질문과 대답을 찾는 공부의 과정이라고 하던데, 이번 스페인 여행은 동행했던 다른 가족과 저희 가족에게 과연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는지 하나 하나 조금씩 조금씩 좀 더 곱씹어 봐야 하겠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스페인 여행에 있어 관념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면 행복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는 충족될 수 있겠지만 많이 가진다고 행복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그것이 적든 많든,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에 납득되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욕심으로 납득되는 게 아닌 삶 말입니다.
스페인 사람이라고 다들 그런 삶을 사는지 아닌지는 며칠 여행과 전해 듣는 얘기만으로 알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히 담아 둘 만한 사실이 되겠지요. 우리네 삶의 팍팍한 현장에서 바라 볼 때, 그러함은 관광으로 듣고 보고 온 그저 그런 이야기로 일시적 기억처럼 세월따라 그냥 넘겨 버릴 순 없다고 생각됩니다.
스페인에 여행을 가면 어떤 볼거리가 있을까 하는 점보다도 스페인에 가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점에 보다 더 관심이 향하게 되었던 탓에 아마도 이런 감상적 서술을 하는 것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트래블레스 맵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 몇 가지 적겠습니다.
1. 여행 방문지의 위치와 각 위치 지점을 잇는 동선이 같이 표시된 간이 지도가 제공되면 좋겠습니다.
2. 쁘라도 미술관 관람을 조금 더 여유있게 볼 수 있게끔 여행 스케줄 기획시 좀 더 긴 시간 배분이 필요하다 느꼈습니다.
3. 공정여행이 왜 공정여행인지에 대해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설명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면이 있겠지만 현지 관광에서 구체적으로 느낌이 들 수 있지 않다면 공정여행을 과연 했는지 어땠는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남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경우 공정여행을 했는지 어땠는지에 대한 의문에 내내 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정여행이라 들었는데 과연 내가 어떤 정의 내려진 테두리 내에서 여행을 하였는지에 대해선 그런 개념상의 모호함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름 공정여행의 성격이라 경험한 것을 말씀드리면,
대형버스에 탑승해서 이리 저리 가다 서다 하는 형식이 아니라 조금은 몸이 피곤하더라도 (사실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도보로, 버스로, 택시로, 지하철, 기차, 비행기 등 탈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골목길 구석까지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상황을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예로, 스페인 광장이 예고없이 스케줄 상 당일 출입 통제되었지만 다음날 방문할 수 있었던 경우처럼) 편하게 대형버스 여행하는 경우보다 크나큰 장점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지의 로컬 가이드 (스페인 현지 사람) 분들의 모습과 정성껏 저희들을 안내해 주시고 카페에서 장시간 앉아서 이런 저런 살아가는 얘기에서 역사 강의까지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신진호 선생님의 모습에서 또 다른 공정여행의 구체적인 느낌을 일부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저의 개인적 경험인 것이고 트래블래스맵에서 생각한 것과 다를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경험들이 있긴 했는데 이런 것들을 뭉뚱그려보면 저의 경우엔 이번 스페인 여행에 있어서 ‘공정여행’이란 표현보다 ‘겉돌지 않았던 여행’ 또는 ‘보는 것보다 얘기하고 생각했던 시간이 더 많았던 여행’이란 문구가 좀 더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쓰다보면 자꾸 생각이 나긴 합니다만 이상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계속해서 만나 뵙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행 관련 이런 저런 일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 2월 12~20일, 희희낙낙 스페인 여행 다녀온 김동은님께서 작성해주신 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