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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 터키

크로아티아 8박10일

익명2017년 3월 13일

떠남

여행의 매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굳이 떠나서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왜 떠나고 싶어하는 걸까? 일상의 편안함을 뒤로 하고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러 가려는 걸까? 어떤 사람은 굳어버린 일상의 군살을 빼러 가려고 떠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세상의 매력을 만나러 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숨막히는 삶의 한 순간을 떠나고 싶어서 갈 것이다. 어쨌든 떠남은 고생이다. 그런데도 그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의 욕망 속에 여행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떠난다. 크로아티아. 직항이 없어 이스탄불까진 12시간. 다시 몇 시간 기다려서 이스탄불에서 자그레브로 2시간, 다시 몇 시간 기다려서 두브로브니크까지 한 시간. 전주에서부터 시작하면 무려 30시간을 날아서 우리 여행의 시작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하루가 넘는 비행기 타는 시간과 기다림이 나를 지치게 한다. 8시간의 시차 또한 나를 힘들게 한다. 기름기 넘치는 기내식도 나를 곤란하게 한다. 따뜻한 나의 방안이 그리운 시간.

첫날

두브로브니크 공항에서 두브로브니크 시내로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입성. 말 그대로 성이다. 성 안에 있는 아파트먼트가 3일 동안 머물 숙소이다. 참 많은 계단을 어찌어찌하며 올라와 3층으로 되어있는 숙소에 도착. 8명인 우리들은 각층에 둘, 셋, 셋씩 나누어 짐을 푼다. 드디어 크로아티아. 온통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가 그득한 두브로브니크. 날이 맑다. 바다는 푸르다. 하늘도 푸르다. 여행의 반은 날씨가 좌우한다. 첫날의 날씨는 쾌청. 여행의 반이 쾌청하다. 나도 덩달아 쾌청하다. 우리 일행 모두가 쾌청하다.

우리의 일정이 시작된다. 꽤 멋진 아파트먼트에 짐을 풀고 식사다운 식사를 한다. 살 것 같다. 현지식이라고 하지만 맛있다. 음식도 쾌청하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든다. 든든한 배를 채우고 잠시 두브로브니크 성을 둘러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한다는 로빈후드 촬영때문에 성 곳곳이 공사 중이다. 그래도 좋다. 저녁과 아침에 먹을 음식을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나 일상과 다른 삶을 일상으로 만들 것이다. 이제 첫날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자. 
 


 

이틀

시차 때문에 자다 깨다하며 일찍 일어난다. 8시간의 시차는 사람을 조금 멍하게 만든다. 그래도 좋다. 모두 모여 일출을 보러 나간다. 신난다. 조금 걷다보니 바다가 붉어진다. 바다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열심히 걷는다. 이상하다. 우리가 걷는 반대 방향이 더 붉다. 그랬다. 우리는 참으로 열심히 서쪽으로 걸었다. 해가 뜨는 동쪽이 아닌 해가 지는 서쪽으로. 다들 웃으며 돌아온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방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서쪽에서 뜨는 해를 보기 위해 걸었던 이런 엉뚱함이 여행을 더 신나게 한다. 새벽 산책 덕분에 밥맛도 좋다. 한국에서 사간 라면과, 현지에서 산 소시지와 빵으로 아침을 맛있게 먹는다. 같이 어우러져 먹는 밥은 언제나 맛있다. 아침에 먹는 라면도 언제나 맛있다. 함께 하는 이국에서 우리가 준비한 음식도 맛있고, 이 분위기도 참 맛있다. 

2일차의 일정은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를 둘러보는 일정. 아주 작은 소국 몬테네그로. 60만명쯤 산다는 나라. 두브로브니크에서 60킬로쯤 떨어져 있는 나라. 2006년에 독립한 나라. 고대 로마의 식민지였고, 중계무역의 거점 도시였다는 나라. 전용차량을 타고 현지 가이드와 함께 하는 일정. 가는 내내 아드리아 해를 볼 수 있는 여정이다. 반도 국가에 사는 우리는 차량이나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를 건널 기회가 없다. 3면이 바다이고, 북쪽은 같은 민족인데도 막혀버린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게을러서 인구수가 적다는 현지 가이드의 농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젊고 잘생긴 미남이 운전하는 차를 편안하게 타고 도착한 코토르. 가는 내내 보았던 아드리해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코토르의 작은 성은 아름답고, 거기서 파는 소품들은 보기가 참 좋다. 소품 선물 몇 개를 산 후 다시 그 가게로 선물을 사러 갔는데 가게문을 닫았다는 그 가게. 정말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현지 가이드 말대로 게으른가 하면서 웃었던 2일차. 점심은 여전히 맛있었고, 여전히 날은 맑고, 아드리아해는 물그림자 그득하게 아름답다. 코토르에서 다시 두브로브니크 숙소로 돌아온다. 저녁거리와 아침거리를 사 들고 들어오는 두브로브니크의 숙소는 이제 집 같다. 두브로브니크의 작은 골목들도 낯설지 않다. 시간을 내어 골목을 돌아본다. 골목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며. 
 


 

사흘

3일차의 일정은 현지 가이드와 함께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골목길 투어다. 눈으로만 보던 골목과 건물을 머리로도 본다. 알고보면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두브로브니크. 내전의 상처인 총탄 자국이 건물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시간은 가도 공간은 그 시간을 남긴다. 우리는 이 시간을 역사라고 한다. 어디나 사람이 사는 곳은 역사의 현장이다. 두브로브니크 또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골목길 투어가 끝나고 성벽 투어를 한다. 날이 맑고 포근하다. 2킬로미터 정도되는 성벽을 돌아본다. 성곽에서 보는 아드리아 해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시간을 남기고 싶은 우리들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어디서 찍어도 화보다. 가까이를 보면 붉은 지붕의 집들이, 멀리 보면 푸른 아드리아 해가 끝없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다, 곱다, 멋지다'라는 말보다 더 멋진 말을 쓰고 싶은 풍경. 아름답다. 곱다. 멋지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일은 아픈 다리를 동반한다. 성벽 투어를 마치고 아픈 다리로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간다. 식당이 아주 깨끗하다. 여행 내내 음식이 참 좋았다. 트래블러스맵 여행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음식이라고 답하겠다. 참 좋은 식당을 안내해주는 이 여행이 좋다. 노 팁, 노 쇼핑도 좋지만 최고의 식당으로 안내하는 이 여행사가 참 좋다.

3일차 오후는 자유시간. 여행의 또 하나 묘미는 쇼핑이다. 어제 사지 못한 장미 크림을 산다. 마그네틱도 산다. 핸드크림도 산다. 사는 일만큼 즐거운 일도 없으리.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물건을 사기 위해 우리는 돈을 버는지 모른다. 쇼핑을 했으니 맛있는 것도 먹어야지. 우리는 부자카페로 향한다. 크로아티아어로 부자는 '구멍'이란다. 성곽 밖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와 와인이 맛있다. 우리를 스쳐가는 바람이 싱그럽다. '꽃보다 누나'에서 마셨다는 레몬맥주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날이 지면서 추워져 일몰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3일차의 두브로니크는 아드리아 해에 해를 숨기면서 저문다.
 


 

나흘

4일차는 정든 두브로브니크를 뒤로 하고 황제의 별장이었다는 스플리트로 향한다. 차에서 내린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두브로브니크의 야자수. 나는 야자수가 좋다. 아니 야자수 사진이 좋다. 야자수 아래에서 찍는 사진이 좋다. 야자수와, 야자수 아래 의자와, 야자수 뒤의 가게들이 정겹다. 두브로브니크보다는 적은 계단이지만 계단을 올라 숙소에 도착한다. 7개의 방만 있는 작은 호텔. 마음에 드는 숙소이다. 황제를 영접하기 위해 기다렸다는 곳에 있는 숙소. 고즈넉하니 좋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점심 식사를 한다. 여전히 맛있다. 내 입맛이 유럽식인가 보다.

점심 식사 후 로컬 가이드 나디아를 만나 구시가 안 골목골목을 돌아다닌다. 나디아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이곳과 잘 어울린다. 나이를 먹은 구시가와 나이를 먹은 나디아가 잘 어울린다. 나디아처럼 나이를 먹어도 저런 열정이 있으면 참 좋겠다. 나디아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좁다는 골목도 지난다. 골목 사이사이에서 사진도 찍는다. 재밌다. 설정하며 찍는 사진은 찍을 대가 사진 볼 때보다 더 재밌다. 나디아와 헤어진 후 대성당 종탑에 오른다. 비가 살짝 온 후라 미끄럽다. 몇 십 미터 올라왔는데 바람이 세다. 겨우 몇 십 미터 올라왔는데 구시가의 모습이 다르다.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곳도 다르게 보인다. 골목에서 본 구시가와 종탑에서 보는 구시가가 같으면서 다르다. 사는 일도 이럴 것이다.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보며 사는지를 생각해본다. 혹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사람들을, 사람들의 삶을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종탑에서 내려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파노라마 사진도 찍고, 빙빙 돌며 셀카도 찍는다. 공중부양 사진도 찍는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신나게 사진을 직으며 논다. 벌써 해가 진다. 오늘도 저녁 찬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향한다. 벌써 4일차의 날이 저문다. 
 


 

닷새

5일차. 아직 스플리트이다. 5일차는 버스를 타고 트로기르로 향한다. 스플리트에서 2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 시외버스로 40분 정도 소요되는 곳. 섬이지만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곳. 외국에서 대중교통, 그 중에서도 버스를 타는 일은 설렌다. 전용버스를 타면 편하지만 우리끼리일뿐이다. 현지인이 이용하는 시외버스를 타는 일은 부담이 있지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우리와 함께 탄 사람들을 보면서, 창 밖을 보면서 트로기르로 향한다.

트로기르 또한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좁은 골목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와 트로기르는 다 다를 것이지만 그 다름을 잘 알 수 없다. 겨우 한 나라를 제법 심도 있게 다니고 있는데도 제대로의 모습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나라들을 여행한다. 이렇게 한 나라만 다녀도 다 알 수 없는데 말이다.

넓게 볼 것인지, 깊게 볼 것인지를 여행은 선택하게 한다. 나는 깊게 보기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크로아티아만 다니고 있다. 그런데도 크로아티아를 깊게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여행이 다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어찌 여행객이 다 알 수 있겠는가. 어쨌든 이곳 또한 관광으로 먹고 사는 곳이다.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관광지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돌아보기도 하지만 쇼핑도 한다.

시외버스를 타고 스플리트로 다시 돌아온다. 스플리트로 돌아오니 이곳이 반갑다. 야자수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준다. 조금 익숙해진 스플리트를 걷는다.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아로마티크라는 향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 다양한 향 제품을 산다. 그 옆 와인 가게에서 저녁에 먹을 와인도 산다. 스플리트에 와서야 겨우 크로아티아 돈 쿠나를 환전한 우리는 열심히 쇼핑을 한다. 소품 가게의 여러 물건들도 우리 손에 들어온다. 스플리트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
 


 

엿새

6일차. 몸이 조금은 무겁다. 아침에 숙소 옆 광장에서 크로아티아 전통 아카펠라 합창단의 노래를 듣는다. 아카펠라 4인조 합창단 클리파의 화음이 참 좋다. 남성 네 명의 목소리가 건물의 벽을 타고 돌다가 내 귀에 들어온다. 벽이 소리를 모아서인지 듣기가 참 좋다. 어느 곳에서나 음악은 사람을 참 편하게 한다. 특히 이런 아카펠라는 더욱 그렇다. 네 명의 중후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하모니가 내 몸 곳곳에 스며든다.

오후에 크로아티아 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플리트비체로 향한다. 크로아티아의 상징이 되어버린 곳. 차는 해변을 따라 가다가 산길로 향한다. 큰 산 하나를 넘었는데 눈이 쌓여있다. 춥다. 숙소에 내리는 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레

아침에 일어나니 길이 얼어있다. 눈도 그득하다. 7일차의 시작이다. 배를 타야 하는데 물이 얼어서 배를 탈 수 없다. 전기차를 이용하여 하이킹 장소까지 이동한다. 눈이 많이 쌓여있다. 미끄럽다. 조심조심 걷는다. 눈을 들어 좌우를 본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도시의 여행이었다면 이곳은 자연과 함께 하는 여정이다. 도시의 여행도 즐겁지만 나는 이런 자연 속을 걷는 게 더 좋다. 눈 아래로 자연이 만든 폭포가 아름답다. 그 물줄기 사이로 난 길들이 곱다. 이 물길만 걸어도 행복하다. 눈으로 호사를 누린다. 여유있는 일정이 여유있는 여행객을 만든다. 우리는 참으로 여유있는 여행객이다. 눈으로, 가슴으로 플리트비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느낀다.

겨울이라 식당 문을 닫아 스낵류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가이드가 이야기했는데 뜻밖에 멋진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우아한 점심을 먹는다. 송어도 먹고, 소도 먹는다. 눈 때문에 플리트비체를 다 못 걸은 우리는 전기차를 타지 않고 걸어오기로 했다. 오는 길도 즐겁고 신난다. 잠깐 눈싸움도 한다. 언 호수에서 노는 오리와 함께 논다. 오늘도 신나는 하루다.
 


 

여드레

플리트비체를 떠나 마지막 남은 여정, 자그레브. 크로아티아의 수도. 4시간쯤 차를 타고 자그레브에 도착. 지금까지 본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여기 숙소도 구시가에 있다. 온통 유리로 된 호텔. 엘라치치광장과 가깝다. 이미 많은 것을 보아서인지, 지쳐서인지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자그레브가 가슴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쇼핑에 힘쓴다. 돌아갈 길에 떠오르는 사람들의 품에 안길 선물들을 마지막으로 산다. 나를 위한 선물도 산다. 

크로아티아. 축구의 나라. 발칸반도. 유고 연방. 이곳에 오기 전에 알던 크로아티아다. 그런데 내가 본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움을 품은 나라. 이탈리아와 얽히고 설킨 역사를 가진 나라. 동유럽의 문화와는 조금 다른 자체의 문화를 가진 나라. 이 또한 크로아티아를 제대로 본 것은 아니리라.

눈에, 머리에, 가슴에 크로아티아를 품고 돌아온다.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내 일상의 삶에 크로아티아는 어떻게 남을까?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내내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국이다. 다시 일상의 삶이다.

* 2017년 2월 트래블러스맵 크로아티아 8박10일 여행을 다녀오신 이정관선생님(글), 형은수선생님(사진)께서 작성해주신 후기입니다.

여행지
크로아티아터키두브로브니크자그레브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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