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함 그리고 여유
다소 충동적으로 결정한 일본 여행. 일본 어디든지 가리라 마음먹고, 적당한 숙박시설과 항공기편을 찾아 헤매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너무 비싼 여행경비에 좌절을 했다. 이번에는 안 되나 보다... 포기 할 즈음 만난 트래블러스 맵! 물론 여기에서도 처음 통화할 때는 그 만만치 않은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 박주혜 담당자님이 수용 가능한 금액?에 가나자와 3박 4일(2. 3.~2. 6.)을 추천했을 때, 무조건 수락하기로 했다. 왜? 이틀이나 자유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민족의 대 명절 설날에 떠나는 여행! 생각만으로도 배시시 치솟는 입 꼬리를 주체할 수 없다. 그 많은 잡다함으로부터 벗어나 ‘식사’를 그저 즐길 수 있는 흔치 않는 경험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처음 가는 여자들만의 여행, 늘 직장생활에 바쁜 친구가 초등학생 딸과 함께 이번 여행을 같이하기로 했다. 씩씩하게 다녀오자.
2월 3일 출발하는 날!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비가 와서 기분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겨울 가뭄에 내리는 단비로 생각할 만큼, 붕~뜬 마음.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그 어떤 것도 우리에 즐거움을 막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우리의 목적지 가나자와는 비와 눈에 고장이 아닌가. “가나자와에서는 도시락은 잊어도 우산은 잊으면 안 된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잦은 비에 습도가 높은 날씨는 뜻밖에 즐거운 경험을 하게 했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바로 알았다. 종일 피부가 땅기지 않았다는 걸, 잠자리에서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는 걸, 심지어 침대에서 책을 보았는데도 전혀 눈의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걸... 그래 내 피부가 내 눈의 문제가 아니라 날씨가 문제의 핵심이었던 거야. 가나자와 친구들이 민낯인데도 왜 그렇게도 피부가 좋아보이던지 절로 깨닫는 순간 이었다. 이곳에서는 굳이 수분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비싼 아이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나처럼 건조한 피부를 가진 사람도 특별한 기능성 화장품이 필요하지 않다. 겨울 한 철 만이라도 가나자와에서 보내고 싶다는 꿈이 생겨버렸다.
▲우산과 장화 그리고 패딩
▲ 새삼스럽게 예쁜 꽃양배추
살다보니 가나자와에 친구들이 생겼다. 마침 우리 숙소와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가 있어 카카오 톡으로 소식을 전했는데 일이 커져버렸다. 첫날 호텔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리고 저녁에는 말 그대로 진수성찬을 상다리 부러지게 손수 차려낸 친구들 덕분에 한 달 전 시작한 간헐적 다이어트는 안중에도 없다. 가나자와 생선이 왜 유명한지 몸으로 익힌 시간, 특히 방어회의 고소한 맛은 최고다. 미디어를 통해 본 일본 사람들의 소담한 상차림은 다 뭐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음날 아침부터 친구들이 찾아와 일일 가이드를 자처했다. 호텔 안내데스크에서 가나자와 주유버스표를 구매한 후 히가시차야가이, 무사거리, 가나자와 시니세 기념관, 오야마 신사, 그리고 가나자와 역까지 이보다 더 꽉 찬 하루는 없을 것이다. 친구들의 배포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그들의 정성은 손님을 맞이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오히려 소박하게 만들어 버렸다. 친구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선물이 너무 작아서 민망할 지경이었고, 결국 나는 큰 소리로 불평했다. “한국에 오기만 해봐. 내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라고!” 소심하게 지금부터 적금이라도 들어야겠다.
가나자와에서 3박 4일은 그 어떤 불만도 나오지 않을 만큼 충만했고 여유로웠으며 자유롭기까지 했다. 가나자와와 우리나라 전주시는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느껴지며 따라서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찾아보니 2002년부터 두 도시 간에 전통문화공예품을 교류전시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고즈넉함을 맛보기 어려운데 가나자와에서는 충분히 느긋하게 즐길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옛날 약국을 이용해 만든 시니세 기념관을 보고나면 가나자와에 공예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고, 나올 때는 입장료(100엔)을 더 내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특히 정성들여 개인정원을 가꾸는 분들에게 가나자와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가나자와에서 먹은 음식은 한 번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호텔의 뷔페도, 백화점 식당가에서 먹은 저녁도, 길거리에서 먹은 간식도 매우 맛있어서 환전을 충분히 해오지 않은 나를 자책하기에 이르렀다. 가나자와는 식도락 여행지로도 엄지 척이다. 특히 하쿠초로 호텔 신라쿠에서 아침마다 제공되는 노도구로(눈볼대)는 화로에 한 번 더 구워서 먹으니 2800엔짜리‘노도구로메시’가 부럽지 않은 맛이다. 물론 다카야마에서 먹은 라멘(600엔)과 소고기구이(3600엔)도 잊지 못할 맛이었다. 설날이라 특별히 딸에게 사준 소고기!!! 일확천금을 간절히 바라게 만든 장본인이다.
▲ 찻집거리에서 만난 롤 케익?
▲ 규카츠
▲ 눈볼대가 있는 설날 아침상
눈 덮인 마을 시라카와고는 멀리서 보면 소인국 같다. 실제 마을에 들어서면 높이 솟은 지붕과 만만치 않은 크기의 건물에 놀라지만 말이다. 그래도 주민들의 키가 큰 편이 아니어서 괜히 반갑다. 수북이 쌓인 눈 더미 사이로 고개를 내민 베르게니아 꽃을 발견한 순간 어찌나 좋던지 주책없이 터져 나오는 탄성과 일행을 큰소리로 부르고 싶은 충동을 숨겨야만 했다. 트래블러스 맵에서 제공한 주의 사항에 시끄럽게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가 있었으니까. 이곳이 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지, 전통 마을을 보전하고 보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다보면 어렴풋이 알게 된다.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기 전에 둘러 본 미즈카가미 정원은 또 하나의 즐거운 경험을 하게 했다. 이곳을 보는 순간 안도 다다오(1941~)의 작품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일본의 대표 건축가인 다니구치 요시오(1938~)의 수경(水鏡)정원이었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한창이다. 이런 건축물은 모두 물과 콘크리트 그리고 직선을 빠짐없이 사용하고 있다. 직선이 주는 날카로움은 수면으로 인해 상쇄되고 자연스럽게 명상에 들게 한다. 갑자기 물고기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마쓰오 바쇼의 ‘개구리 풍덩’이라는 하이쿠가 생각난다. 그런데 이 소리는 기계장치가 내는 소리란다. 다니구치 요시오 작가의 미니멀리즘 속에 내제한 섬세함에 새삼 놀란다.
▲ 히가시차야가이
▲ 시라카와고
▲ 미즈카가미 정원 (사색의 공간)
호텔에서 5~10분 거리에 위치한 가나자와 성과 겐로쿠엔(兼六園)정원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것은 부연이리라. 그러나 세상에 내가 겐로쿠엔 정원에서 설날 아침에 커피를 마시다니...부지런한 중국인과 우리나라 관광객이 들이닥치기 전, 정결한 아침 기운 속에서 마시는 커피는 호텔에서 제공한 공짜 커피도 하와이안 코나 맛이 나게 한다. 3박 4일 동안 3번 방문한 겐로쿠엔! 아침의 고요함과 저녁의 적막함, 폭풍이 일 듯 나뭇잎 사이를 가르는 거센 바람 소리,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도 풍경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한다.
▲ 야간의 겐로쿠엔
▲ 아침의 겐로쿠엔
▲ 교큐센인마루 정원(가나자와 성)
서로를 이해해주는 사람과의 여행은 늘 즐겁다. 초등학생 딸도 중학생 딸도 그리고 우리도 행복했던 가나자와 여행. 무사히 건강하게 잘 다녀왔다. 겐로쿠엔(兼六園)정원의 매화 숲에 핀 꽃으로 봄소식을 전하며 행복했던 가나자와 여행을 추억 속으로 보낸다.
*** 박주혜 담당자님 그리고 일본 현지 가이드 노경국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19년 일본 가자나와 자유여행을 다녀오신 김화*님께서 작성해주신 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