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란과 볼루빌리스, 모로코에서 유럽의 흔적을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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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란과 볼루빌리스, 모로코에서 유럽의 흔적을 읽는 법

모로코 소도시 이프란은 왜 '모로코의 스위스'로 불릴까? 볼루빌리스 로마 유적이 품은 북아프리카 역사까지, 사막과 메디나 너머 모로코의 또 다른 얼굴을 탐구합니다.

10분 읽기

모로코 여행자가 놓치는 두 장소

향신료 가득한 모로코 타진으로 떠나는 미식 여행
모로코 전통 타진 요리, 모로코

모로코를 처음 상상할 때 누구나 비슷한 그림을 그린다. 사하라의 붉은 모래, 미로처럼 얽힌 메디나 골목, 아라베스크 문양이 새겨진 리아드의 안뜰. 그 이미지들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절반만 맞다.

모로코에는 이슬람 건축과 사막 풍경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장소들이 있다. 미들 아틀라스 산맥 위에 올라앉은 소도시 이프란과, 북아프리카 로마 제국의 서쪽 끝이었던 볼루빌리스 유적지다. 이 두 곳을 보고 나면 모로코를 이해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다. 아프리카와 유럽, 이슬람과 로마, 베르베르 문명과 프랑스 식민지 역사가 한 나라 안에 겹쳐 있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두 장소가 같은 날 일정에 묶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트래블러스맵의 사막의 푸른별, 모로코 12일 상품에서는 8일차에 볼루빌리스와 셰프샤우엔을 함께 배치하고, 6일차 사막 이동 루트에서 이프란을 경유한다. 이 동선 자체가 하나의 역사 독해 방식이다.

이프란 — '모로코의 스위스'라는 별명은 어디서 왔나

아틀라스 산맥 품에 안긴 고즈넉한 모로코 산촌
아틀라스 산맥 베르베르 마을, 모로코

해발 약 1,650m, 미들 아틀라스 고원 위에 자리한 이프란은 처음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게 한다. 붉은 흙담과 평지를 달리다 갑자기 나타나는 뾰족 지붕의 유럽풍 건물들, 잘 정비된 가로수길, 겨울이면 눈까지 쌓이는 이 도시는 마라케시나 페스와 같은 나라라고 믿기 어렵다.

사막 하늘 아래 우뚝 선 고대 로마의 위용
볼루빌리스 로마 유적, 모로코

'모로코의 스위스'라는 별명은 관광 마케팅이 붙인 과장이 아니다. 이프란은 1930년대 프랑스 보호령 시기에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당시 프랑스 행정부는 더운 여름을 피해 근무할 수 있는 고산 휴양지가 필요했고, 아틀라스 산맥의 서늘한 기후를 가진 이 지역을 택했다. 알프스 양식을 본뜬 방갈로풍 주택들이 들어섰고, 도시 계획 자체가 프랑스 식민지 건축 미학을 따랐다. 경사진 지붕, 목조 창틀, 정원이 딸린 단독 주택 — 그 시대의 흔적이 지금도 거리 곳곳에 남아 있다.

이슬람 메디나와 어떻게 다른가

페스나 마라케시의 메디나는 11세기 이후 이슬람 도시 설계 원리를 따른다. 외부에서 내부로, 공공 공간에서 사적 공간으로 점층적으로 닫히는 구조다. 시장·모스크·공중목욕탕이 중심을 이루고, 주거지는 안쪽으로 깊이 물러난다. 미로 같다는 느낌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 의도다.

이프란은 정반대다. 공원을 중심으로 주요 건물들이 방사형으로 배치되고, 가로등과 보도블록이 깔린 광장이 도시의 핵심을 이룬다. 공간이 밖을 향해 열려 있다. 프랑스 식민지 도시 계획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알제리의 식민지 도시들과 같은 논리를 공유한다.

그 결과 이프란은 모로코 왕족과 고위 관료들이 여름 피서지로 즐겨 찾는 곳이 됐다. 모로코 국왕의 별장도 이 도시 인근에 있고, 왕립 알 아카와인 대학교가 들어서면서 도시의 이미지는 더 굳어졌다. 오늘날 이프란은 모로코에서 가장 청결하고 조용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볼루빌리스의 고대 유적.
볼루빌리스 카라칼라 개선문, 모로코

삼나무 숲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틀라스 삼나무는 미들 아틀라스 고원의 자생 수종으로, 이 숲 안에는 야생 바바리 마카크 원숭이 무리가 산다.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유일한 야생 원숭이 종이다. 사막 직전에 이런 침엽수림이 펼쳐지고, 그 안에 유럽풍 도시가 들어서 있다 — 이 조합 자체가 이프란이 주는 독특한 감각이다.

볼루빌리스 — 로마 제국이 멈춘 자리

사막과 오아시스가 빚어낸 고대 요새 마을의 이국적 풍경
아이트벤하두 (Ksar of Ait-Ben-Haddou), 모로코

이프란이 근대 유럽의 흔적을 품고 있다면, 볼루빌리스는 훨씬 오래된 유럽 — 정확히는 지중해 제국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페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33km 떨어진 광활한 구릉지에, 2,000년 전 도시의 윤곽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볼루빌리스는 기원전 3세기경 베르베르 왕국의 수도로 시작됐다가 기원후 40년경 로마 제국에 편입됐다. 이후 약 3세기 동안 로마 속주 마우레타니아 팅기타나의 수도로 기능했다. 오늘날의 모로코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이곳은 로마 제국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서쪽으로 확장한 끝 지점이었다. 로마는 이 지점에서 더 남쪽으로는 진출하지 않았다. 사하라 사막이 자연 경계선이 됐다.

사막 언덕 위 고대 로마 도시의 고즈넉한 휴식
볼루빌리스 고고학 유적지, 모로코

유적이 전하는 구체적인 삶의 흔적

볼루빌리스가 다른 로마 유적지들과 다른 점은 도시의 공공 기반 시설뿐 아니라 일상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인구는 약 2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올리브 오일 생산이 이 도시의 주요 산업이었다. 유적지 곳곳에 올리브 압착기 석조 구조물이 남아 있고, 이를 통해 생산된 올리브 오일이 로마 본토로 수출됐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북아프리카의 농업 자원이 지중해 무역망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갔다는 고대의 경제 회로가 여기서 보인다.

기원후 217년에 건설된 개선문은 높이가 약 8m에 달하며, 현재도 상당 부분이 복원된 형태로 서 있다. 포럼과 신전 기둥들이 지평선을 배경으로 솟아 있는 풍경은 어떤 사진으로도 완전히 담기 어려운 규모감을 준다. 바닥의 모자이크 패널들은 그리스 신화 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일부는 아직도 제자리에 남아 있다 — 유럽의 박물관으로 이전되지 않고 북아프리카 땅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유네스코는 1997년 볼루빌리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북아프리카 로마 도시 중 가장 잘 보존된 유적"이라는 점이 등재 이유 중 하나였다. 모로코 현지에서는 이 유적지를 '왈릴리(Oualili)'라고 부르는데, 베르베르어로 협죽도 꽃을 뜻한다.

광활한 대지 위로 흐르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삶의 풍경
아틀라스 산맥 (Atlas Mountains), 모로코

두 장소를 나란히 놓으면 보이는 것

중세의 시간이 멈춘 듯한 페스 메디나의 이국적인 전경
페스 메디나, 모로코

이프란과 볼루빌리스를 같은 여정 안에서 경험하면, 단순히 관광지 두 곳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모로코라는 공간을 이해하는 층위 자체가 달라진다.

볼루빌리스는 기원후 1세기에서 3세기 사이, 로마라는 지중해 제국이 아프리카 북서단까지 영토를 확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제국은 무너졌고, 유적만 남았다. 이프란은 20세기 초, 프랑스라는 또 다른 유럽 제국이 같은 땅에 근대적 방식으로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 나라, 두 시대, 두 형태의 유럽 문명이 모로코에 겹쳐 있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이 이슬람 문명이다. 7세기 이후 아랍 정복과 함께 뿌리를 내린 이슬람 문화는 로마 유적 위에, 또 프랑스 도시 옆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페스의 9세기 메디나와 볼루빌리스의 2세기 로마 광장이 불과 30km 거리에 공존한다. 이프란의 프랑스식 광장 몇 블록 너머에는 모스크가 있다.

역사와 문명의 교차에 관심 있는 여행자라면, 이 두 장소에서 모로코 전체를 읽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사막에서 메디나로, 메디나에서 로마 유적으로, 유적에서 유럽풍 소도시로 이어지는 동선 자체가 일종의 압축된 문명사 강의다.

파란 골목마다 이국적 정취가 물드는 마을
셰프샤우엔 메디나 골목길, 모로코

여행자의 시선으로 얻는 것

볼루빌리스 유적을 걷다 보면, 이 돌기둥들이 사막에서 출발해 사흘을 달려온 뒤에 만나는 풍경이라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메르주가의 모래 언덕, 다데스 협곡의 붉은 암벽, 페스의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온 뒤 만나는 로마 유적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여기도 로마 유적이 있구나"가 아니라, 이 땅이 얼마나 많은 문명이 지나간 교차로였는지가 몸으로 느껴진다.

트래블러스맵이 지향하는 공정여행의 관점에서 보면, 볼루빌리스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제국이 남긴 유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로마의 올리브 오일 생산 시설은 번영의 증거인가, 수탈의 흔적인가. 유적지에 서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 — 그것이 단순 관광을 넘어서는 여행의 방식이다.

이 두 장소를 포함한 모로코 12일 일정

광활한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유목민과 낙타의 일상
사하라 사막, 모로코

트래블러스맵의 사막의 푸른별, 모로코 12일은 이 두 장소를 모로코 전체 문맥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한 9박 12일 일정이다. 인천에서 카사블랑카로 입국해 마라케시, 아이트 벤 하두, 와르자자트, 다데스·토드라 협곡을 거쳐 메르주가 사하라까지 내려갔다가, 이프란을 경유해 페스로 올라오고, 볼루빌리스와 셰프샤우엔, 탕헤르, 라바트를 거쳐 카사블랑카에서 귀국하는 루트다.

사막과 협곡, 유적과 소도시, 항구와 도시가 지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이어지는 동선이다. 모로코의 남북, 내륙과 해안, 고대와 근대를 한 번의 여정으로 통과하는 방식이다. 이프란은 사막에서 페스로 이동하는 6일차에, 볼루빌리스는 페스를 떠나 셰프샤우엔으로 가는 8일차에 배치된다.

푸른 바다와 만나는 카프 스파르텔의 그림 같은 등대
카프 스파르텔 등대, 모로코

전 일정 한국어 가이드가 동행하며, 소규모로 운영된다. 볼루빌리스처럼 해설이 필요한 유적지에서는 단순 방문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을 함께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체 일정과 요금은 상품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떠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들

붉은 도시 마라케시와 장엄한 설산 아틀라스가 빚어낸 이국적인 조화
쿠투비아 모스크 및 아틀라스 산맥 (Koutoubia Mosque and Atlas Mountains), 모로코

볼루빌리스 유적지는 그늘이 거의 없다. 발굴된 도시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여름에는 직사광선 아래 상당한 열기를 견뎌야 한다. 모자와 물, 편한 신발은 챙기는 게 좋다. 바닥의 모자이크 위로 직접 걷는 구간이 있어 발바닥에 닿는 돌의 감촉이 꽤 불규칙하다.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 방문이 훨씬 쾌적하다.

이프란을 경유할 때는 기대 수준을 미리 조율해 두는 게 좋다. 긴 체류보다는, 사막 쪽에서 올라오다 처음 삼나무 숲과 유럽풍 건물을 마주치는 그 순간의 감각 자체가 이프란이 주는 핵심 경험이다. 소도시 산책과 야생 원숭이 관찰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두 장소 모두 조용히 생각하게 만드는 곳들이다. 셀피를 찍기보다 잠깐 멈춰서 이 땅 위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를 상상해보는 시간 — 그것이 이 두 곳이 여정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방식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붉은 진흙 성채, 아이트 벤 하두의 골목길
아이트 벤 하두, 모로코

상담 및 예약 안내

선인장과 푸른 빌라가 어우러진 마라케시의 이국적 정원
마조렐 정원, 모로코

이프란과 볼루빌리스를 포함한 모로코 12일 전체 일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방법으로 확인하거나 상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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